선생님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나눔을 실천한 도림초등학교 신세환 선생님을 만나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 날은 스승의 날이기 이전에 세종대왕 탄신일이다. 이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날을 스승의 날로 정한 까닭은 1965년 청소년 적십자 중앙학생협의회(RCY)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스승의 날을 맞아, 14년째 나눔을 실천하며 교사의 길을 걷고 있는 도림초등학교 신세환 선생님을 만났다.
-수상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 평생복지(교육복지/봉사)부문으로 수상하였다. 봉사한 곳은 대구가 아닌 경기도 군포에 있는 ‘양지의 집‘과 안양의 ’좋은집‘이다.
‘양지의 집’은 뇌병변, 뇌성마비, 다운증후군, 소아마비, 복합장애 등 주로 중증장애인이 모여 생활하는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여 목욕봉사, 독서봉사. 장애인 레크리에이션 지도, 생활 소품 만들기 지도, 정기적으로 자선 바자회 행사 지원, 주방 청소, 간식 지도, 각종 행사 이벤트 등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봉사를 하면서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고자 했다.
‘좋은집’은 가족으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의 생활시설인데 시설 보수 및 생활환경 조성 등의 봉사활동을 통해 소외된 어린이들과 소통하고자 했는데 그 점이 인정되어 수상하게 되었다.
-어떻게 대구가 아닌 경기도에 가서 봉사하게 되었나요?
▶이렇게 원정 봉사를 하게 된 것은 서른 살이었던 2006년, 경남 하동 남해대교부터 경기 파주 임진각까지 24일간 종단 여행을 하던 중 국토종단을 결심하도록 해준 분이 만화가 김희문 작가다. 그 분이 쓴 홀로 국토 종단한 내용을 담은 『희망을 찾아 땅 끝에 서다』라는 책을 읽고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방명록에 감사 인사를 남겼는데 작가로부터 군포를 지나가게 되면 ‘양지의 집’에 한 번 오라는 답장을 받았다. 그래서 가게 되었고 이런 우연한 만남으로 봉사를 하게 되었다. 봉사를 통해 뿌듯함을 느꼈지만 대구에서 거리가 멀어 일회성으로 그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날 함께 한 ‘문스패밀리’ 봉사대원이 “한 번만 오고 말겠군요.”라는 말에 시간이 되면 계속 올 거라고 했다. 그들은 원거리라 기대하지 않고 서운해서 말했을 뿐이겠지만, 저로서는 오기가 생겼고 제가 한 말에 책임지기 위해 행동으로 옮겼던 것이다. 매월 한 번, 코로나 기간을 제외하고 14년 동안(216시간) 왕복 540km를 이동하며 지금껏 봉사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스승은?
▶ 2001년 9월에 대구남송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교단에 서게 되었다. 교사의 길을 택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해준 중1 때 도덕 과목을 담당했고 담임이셨던 변상욱 선생님의 영향이 아주 컸다.
그 당시, 학생카드에 자기 특기를 적는 칸이 있었다. ‘웃기’ 라고 적었는데 주변에서는 다들 비웃으며 “웃는 것이 무슨 특기냐”고 했지만 변상욱 선생님은 진짜 좋은 특기를 가졌다고 친구들 앞에서 저를 한껏 추켜세워 주셨다. 그땐 선생님으로부터 인정받은 기분에 좀 우쭐했었던 것이 다였지만, 자라면서 그 선생님이 학생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선생님과 남달랐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저도 학생의 특별한 생각과 행동을 찾아 장점으로 만들어주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그 후로 계속 해왔다. 그 일이 지금도, 앞으로도 교단에 서는 한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남들과 다른 한 개인의 다양성을 없애고 보편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키려는 것보다 그것을 긍정적으로 활용할 방법을 같이 고민해주고 용기를 주는 선생님이 되고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특히 스스로 장점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감이 결여된 학생에게 장점을 찾아 칭찬해주면 학생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교사로서의 뿌듯함을 느낀다.
-힘들었던 일과 보람 있었던 일이 있었다면?
▶ 힘들었던 점은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초창기에 보람 있었던 일이 참 많았는데 그중에서 딱, 한 가지만 고르라면 2002년 남송초에서 6학년을 담임했던 때였다. 졸업식을 며칠 앞둔 발렌타인데이 날, 학생의 어머님으로부터 초콜릿이 든 상자와 그 속에 편지 한통을 함께 전달 받았다. 그 편지 속에‘초등학교 6년 동안 한 번도 장래희망이 없다고 했던 우리 아들이 선생님과 함께 1년을 보내면서 처음으로 꿈을 갖게 되었고, 그 꿈이 선생님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들에게 처음으로 꿈을 갖게 해줘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벌써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 바라는 점이 있다면 장애인시설 봉사를 해오면서 특수 교사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특수교육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꾸준히 특수교사로 전직을 시도하고 있다. 되도록 빠른 시일에 그 꿈이 꼭 이루어져 특수교사로서 교직 2막을 시작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