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유교 예절, 쉽게 배우는 제례의 멋!!
향교(공립학교)는 고려시대에 향학으로 생겨나 조선시대에 있었던 국립 지방 교육기관으로 사부 학당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 서원(사립학교)이 발달하여 기능이 약화되었지만 양립의 제도는 유지해 온 교육문화의 장이다.
유서 깊은 달성에 위치한 현풍향교는 옛 전통과 오랜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전국에서 으뜸가는 문화를 자랑하며 타지역에도 귀중한 예우를 받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뿌리를 계승할 젊은 꽃봉우리 세대는 향교의 전통의례나 인과 예를 수신하는 유학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의 예절, 윤홍석 전교에 듣는다.
▶안녕하십니까? 전통 예를 이끄는 선각자 앞에서 버릇없는 실수라도 할까 봐 긴장됩니다.
먼저 바쁜 시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교님은 지난 5월 18일 전교에 취임하셨는데 어떻게 임하고 계시는지 감회를 듣고 싶습니다. - 네 향교에 전교 소임은 아무나 맡을 수 없는데 부족한 사람이 성현의 문묘에 나아가 고유하고 선유의 빛난 업적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아직도 더 배우라는 소명으로 알고 직분에 충실할 뿐입니다. 성현의 말씀에 인의예지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라 하였습니다. 사단(四端)을 넓히고 채워서 사문 진작에 온 힘을 다해야 하겠지요.
▶ 전교님은 오랫동안 향교를 수호하고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언제부터 현풍향교와 연을 맺고 오늘날 전교에까지 이르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 1990년 현풍향록을 간행하여 분질(책을 나누어줌)을 앞두고 당시 최수찬 유도회장과 곽영효 의전수석 두 현유의 권고로 보조 역할로 입교(43세)하였습니다. 그 후 30년 동안 청년유도 회장, 유도회 감사, 총무장의, 총무국장, 의전수석, 성균관 전학, 전의, 전인, 유교신문 취재기자, 기자협의회 고문, 청소년 인성교육, 청소년 유생체험 의전 교육, 현풍향교 석전의례집 편찬, 현묵회 서예반 주재, 성균관 예절교육 강사 위촉,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석전보존이수 등 두루 거치면서 현풍향교에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자랑을 좀 더 보탠다면, (사)한국미술협회 서예 부분(국전) 초대작가, (사)한국서도협회 초대작가 심사위원, (사)한국서도협회 대구지회 부회장도 맡고 있습니다.
▶ 우리의 전통문화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현풍 사직제 아니겠습니까. 특히 달성은 농작이 많아 풍작을 기원하며 올리는 사직제의 의미와 봉행 순서를 알기 쉽게 자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 사직대제는 조선시대에 임금이 행해진 국가적인 대제로 종묘(宗廟)사직(社稷) 중 하나로 군현(달성군 현풍)에서 사직단을 설치하고 토지를 관장하는 사신(社神)과 곡식을 주관하는 직신(稷愼)을 제사 지내는 것으로 국조오례의(조선시대 임금이 명한 다섯가지 예) 길례편(吉禮篇)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달성 사직제는 춘추로 일 년에 두 번 달성군민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달성군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는 제를 올립니다. 모든 제사는 신위가 북쪽을 상위로 남쪽을 향하지만 유일하게 사직제는 남쪽에서 북을 향해 설위하고 향사합니다.
봉행 순서는
행례는 먼저 사신과 직신의 제상에 제찬을 진설하고 집례(사회자)의 창홀(唱笏)에 맞추어 봉행한다.
영신례 : 신을 모시는 예로 모두 사 배 한다.
전폐례 : 사신과 직신에게 향과 폐백을 올린다.
초헌례 : 초헌관이 첫 번째 잔을 올리고 축을 읽는다. (군수)
아헌례 : 아헌관이 두 번째 잔을 올린다. (군의회의장)
종헌례 : 종헌관이 세 번째 잔을 올린다. (문화원장)
음복례 : 초헌관이 음복주 조례를 한다.
헌작배 : 헌관 모두가 헌작 배를 한다.
송신례 : 신을 보내는 마지막 사 배를 한다.
망예례 : 축문과 폐백 곡식 등을 태워 묻는다.
입니다.
▶ 조선시대 예복이 요즘 패션쇼를 보는 듯 특별하고 품위와 위엄이 느껴집니다. 평복의 차림도 백의민족의 자긍심을 느끼게 합니다. 예복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세요. - 향교의 전통 예복과 유생의 평상복은 구분이 있습니다. 향교는 의전에 따라 문묘를 봉심하는 곳입니다. 석전 시는 금관 제복을 입고 분향과 고유할 때는 사모관대 등 각 행례에 따라 제관과 재생의 제복이 차이가 납니다.
한복은 조선시대부터 우리 선조가 평소 많이 착복했던 바지저고리 두루마기를 한 벌로 표준으로 하며 유림의 의전행사에는 도포(유복)를 입고 갓이나 유건을 착용합니다.
전통문화를 계승 진작하는 교육자로서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표본이 되고자 평상에도 즐겨 입고 계량한복은 잘 입지 않습니다.
▶ 청소년들이 향교를 찾아 인성교육과 유생체험학습을 많이 하던데 어떻게 지도하고 계십니까? - 청소년 인성교육은 쉽지가 않습니다. 요약하면 조선시대 성균관유생이 유복을 입고 공부하고 문묘(공자를 모신사당)에 알묘(종묘나 사당에 배알함)하는 행례를 하고 활쏘기, 재기차기, 투호 던지기 등을 체험하는데 많은 학생이 시간 부족으로 충분한 체험을 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윤리는 하늘의 내린 천리이고 도덕은 사람이 약속한 질서라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꼭 실천해야 할 덕목인 윤리 도덕은 알고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웃어른들 말씀에 ‘본 뵈 없다’란 말이 있습니다. 본 것이 없는데 무슨 행동을 하겠나? 아이는 어른의 행동을 보고 배웁니다. 그리하여 상호간 존경과 자애를 실천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인성교육입니다.
▶ 끝으로 향교 보존과 존재 의미에 대해서 전하고 싶은 전교님 사안이 있으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한 국립 교육기관입니다. 중앙에 성균관이 있고 각 군현에 향교를 세워 지방 향민의 교육을 담당하고 학전과 경서(經書)를 하사하였지요. 성균관은 대학교, 향교와 서원은 지금의 중·고등학교에 해당합니다. 교육의 과정은 어릴 때부터 지인이나 서당에서 기초한문을 익히고 15세가 되면 서원이나 향교에 들어가 경서를 배우고 향시인 소과에 응시하여 급제하면 생원 또는 진사가 됩니다. 성균관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지면 성균관유생이 되어 학문과 육례를 연마하여 대과에 응시하여 급제하면 벼슬을 받아 관직에 나가게 됩니다. 지금의 학교는 조선조 말 일제강점기부터 학교 설립을 시작하여 급격한 교육 진흥으로 오늘날의 좋은 학교로 변천되었습니다. 오늘의 향교는 학교의 기능은 하지 않고 문묘를 수호하고 전통 민속 문화와 민족정신을 양양하고 천명하는 교화의 장으로 동원되고 있습니다.
유림에서 윤홍석 전교의 실제는 마라톤 이어달리기처럼 바턴을 놓치지 않고 강사와 봉사 경력이 유교의 멋처럼 은은하다. 노년이 아름다운 신사를 만났다. 피천덕 『인연』에 맛과 멋이 떠오르는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