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해랑교 전설을 찾아서
지금은 거의 잊혀져가고 있지만, 해랑교에 대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해랑교가 있기 훨씬 오래전, 그 부근에 돌 징검다리가 있었다. 사람들은 도깨비 징검다리라 불렀다. 아무리 심한 홍수가 나도 떠내려가지 않아 도깨비가 만든 돌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존 역사 자료에 의하면 금호강 달천리 부근에 달천진이라는 나루터가 있었다. 어느 날 그곳에 부산에서 해랑이라는 여자 아이와 과부가 함께 들어 왔다. 과부는 나루터에 정착하여 주막을 차렸고, 10년 동안 열심히 일하여 많은 돈을 벌어 딸 해랑을 혼인시켜 데릴사위를 맞이했다. 강 건녀 편에 있는 땅도 사서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가운데 자신의 신세를 돌아보니 처량함이 있었다.
그러던 중 강 건너 땅에 농사를 지으면서 그곳에 사는 홀애비를 보게 되었는데, 서로 신세를 위로하며 시간이 갈수록 연정이 커져 밤에 몰래 만나곤 했다. 밤에 자주 외출을 하는 어머니를 이상하게 여긴 해랑이 남편과 함께 뒤따라가니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 있으면 날씨가 추워져 어머니가 강을 건너면서 발이 시릴 것을 생각하니 걱정된 해랑은 남편과 함께 돌다리를 놓기로 했다. 며칠 만에 돌다리가 완성되고 해랑어미는 편하게 강을 건너 정인을 만날 수 있었으며, 마침내 두 사람은 재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았다. 마을 사람들은 며칠 밤 사이에 만들어진 다리를 도깨비가 밤에 몰래 놓은 것이라 하여 도깨비 징검다리라 불렀고 나중에 해랑이 놓은 것을 알고, 이후 새로 다리를 놓을 때 해랑교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다리 이름이 해량교라는 유래가 전해온다.
지금도 그 돌다리가 있는지, 그리고 옛 나루터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먼저 서재 어르신들에게 여쭤 보았다.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면 옛 나루터는 서재 소망교회와 강나루 식당 사이에 있었다고 한다. 4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달천, 박곡 등에서 학생들이 그곳으로 배를 타고 와서 서재에 있는 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가리킨 징검다리는 역사 자료에서 전하는 달천진과 달리, 해랑교를 지나 기찻길 다리 가기 전에 그 부근에 나루터가 있었는데 그곳에 있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먼저 달천진이라고 불렸던 나루터의 위치를 확인하고자 나루터 이름의 흔적이 남아있는 강나루 식당에 가서 물어보니, 주인은 자신이 어렸을 적 바로 앞에 나루터가 있었다고 말했다.

달천진이라는 나루터가 있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곳
그러나 징검다리는 어느 곳에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아, 옛날에 근처였던 박곡리로 가서 알아보기로 했다.
박곡리에 6대째 살고 계시는 박원덕(78)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철도길 다리 가기 전에 나루터가 있어 포항 등지에서 소금배가 왔다 갔다 했는데, 그곳을 해남포라 불렀다고 말씀하셨다. 해랑어미가 부산에서 왔고, 장사꾼을 상대로 주막을 했다는 이야기를 비추어 볼 때 해남포에서 터를 잡았을 가능성이 크고, 따라서 징검다리도 이 부근에 있었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또한 박 할아버지는 해랑교에서 철도길 다리 방향으로 30m 거리에 옛날 잠수교가 있었다고 말씀하셨다. 비만 오면 물에 잠겨서 잠수교라고 불렸다고 한다. 나중에 해량교가 건설되고 잠수교는 철거 되었다. 아마도 지금의 다리가 해남포와 가까웠던 터라 그 유래가 아직 남아 있어 ‘해랑교’라고 지은 것으로 추측한다. 함께 계셨던 장 할아버지도 해랑교에 대한 유래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해 단순히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잊혀져간 우리의 역사가 아닐까란 생각에, 현재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옛날 이 근처에 해남포와 징검다리가 있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곳
과거 우리는 근대화 운동으로 새롭게 많은 것을 얻기도 했지만, 소중한 우리의 것을 지켜내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날, 앞으로 우리 문화를 알고 계승해 나가는 노력이 중요함을 느낀 탐방이었다.

현재의 해랑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