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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부인의 허밍코러스

등록일 2020년07월31일 11시22분

나비부인의 허밍코러스

                                        -이 병훈-


1945년 8월 9일 11시 2분,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7만여 명의 고귀한 생명들이 한순간 회오리바람처럼 역사의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고, 도시는 잿더미로 변했다. 원폭전시관엔 그때의 참혹함을 말해 주듯 피폭자의 두개골이 철모에 엉켜있고, 여러 개의 공병이 사람 뼈와 함께 녹아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말로만 듣던 원폭의 폐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자신의 이상을 전쟁으로 실현해 보려는 위정자의 흔적이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 전시되어 있고, 나는 호기심으로 그 장면을 재생해 보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렇듯 인간의 오만과 무력함이 전시관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우리는 그 무엇에 인간의 강함을 확인시킬 수 있는지. 잊혀져가는 역사의 끝자락을 움켜잡고 마음속으로 절규해본다.


나가사키는 일본의 폐쇄정책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동서양 교류의 장이었고, 당시로는 유일한 무역항이었으며, 천주교의 성지이기도 했다. 1571년부터 서양문물이 첫발을 내디딘 곳이다 보니 천주교 등 외래종교도 이곳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번져나갔다. 그러자 교세의 확장을 염려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마침내 1587년 나가사키에 천주교도 추방령을 내리게 되었다. 이에 많은 신자들에 대한 가혹한 박해가 있었으나 신앙의 절대성은 굽혀들지 않았다.


그 후 그때 순교한 스페인 신부 6명과 일본인 신자 20명에 대해 1862년 로마교황청은 성인으로 추대했고, 1864년에는 일본 최고의 고딕성당인 오우라텐슈도가 건립됐다. 26인 순교성당이기도 한 이 성당은 지금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전시관 안으로 발을 들이면 정면에 이 성당의 전면이 세워져 있는데,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성당의 잔해를 중심으로 전시관이 건립되었다고 한다. 조명 때문인지 어두움 때문인지 검게 그을린 성당 기둥에 부조된 성모상이 눈물로 반짝이고 있음은 나의 착시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왜 하필 이런 곳에다 원폭 투하를 한 것일까.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을 가장 높은 가치로 내세우는 나라가 이렇게 할 수밖에는 없었던 것일까.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휴머니즘으로 반영해보면 훗날 역사는 이 일을 어떻게 평가할까.


우리에겐 일본이라면 원형적인 배타성이 있다. 임진왜란 때도 이곳을 통해 네덜란드 상인에게서 건너 받은 조총을 대량 제작하여 조선을 침공했고, 36년 간 우리를 송두리째 유린하여 민족 말살을 꾀했고, 지금도 역사 왜곡과 독도 문제 등으로 우리의 심사를 괴롭히고 있다. 유독 일본과의 문제에서는 상대적 상호인정과 타협점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그들도 나가사키․히로시마 원폭의 섬광 속으로 15만 명이 사라졌다. 이들도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을 절박함에 생각이 멎으니, 평소의 미움은 사라지고 정작 까닭도 모르고 죽었을 많은 사람들의 애꿎은 죽음에 묘한 연민의 정이 차올랐다.


돌아보면 인류의 역사는 투쟁과 전쟁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왔다. 그리고 인류의 발전사도 그 폐허에서 싹이 텄었다. 진화론적 혹은 변증법적 측면에선 전쟁의 필연성이 주장되어 질 수 있고, 인간 존엄성 자체가 전쟁의 파생어일 수 있다. 하지만 존재의 가치론적 측면에서는 전쟁은 영원히 부정되어져야할 산물임이 분명하다.


전시관 저만치에 있는 평화공원에 가니 당시 타버린 벽돌담을 그대로 보존하여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각국에서 보내진 반전과 평화를 상징하는 조각들이 인간의 부단한 각성을 요구하며 도열해 있다. 한켠엔 원폭의 참상에도 살아남았다는 문주란이 희생자들의 넋인 양 무리지어 흰 꽃술을 뿌리고 있는데, 바람에 꽃대가 흔들릴 적마다 무심히 스치는 발길들에게 공존과 안녕을 당부하는 것만 같았다.


미국 해군장교와 일본여인의 슬픈 사랑을 담은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무대이기도 한 나가사키는 핵전쟁의 아픈 상흔 속에서도 일본 특유의 단아함을 잃지 않으며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결 속에 치유의 밝은 빛을 품고 있다.

‘나비부인’의 ‘허밍코러스’가 엷은 안개에 실려 그리움으로 젖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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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이병훈(李炳勳) - 본명: 止軒 - 李炳淳(이병순)

<현대문학> 등단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한국낭송문학회 회장

달성문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문화진흥위원

사)세계문인협회 시분과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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